우연히 일본어를 할 줄 알게 되었다

귀가 뜨이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딱 한 대 있었는데, 나랑 A가 두 시간씩 번갈아 가면서 사용했다.

나에게 주어진 두 시간을 다 쓰고 나면, 할 게 없어 심심한 나는 옆에 앉아서 A가 컴퓨터로 하는 것을 같이 보고는 했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고 주로 방송이나 예능을 볼 때 옆에 앉았는데, 대부분이 일본 방송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일본 문화와 일본어를 접하게 되었다.

거의 매일 일본어를 들으며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이란 나라 그리고 언어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때때로 드라마나 애니에서 들었던 단어나 문장들을 의미도 모른 채 따라 말하거나,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찾아보면서 그림 그리듯 따라 써보기도 했다. 이것도 공부라면 공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비슷한 생활을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했고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혼자 많이 찾아봤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당연히 일본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귀가 뜨여서 일상에서의 대화는 70%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말을 할 수 있게 된 계기

이 상태로 몇 년이 지나, 대학교에 입학했고 4학년이 됐다. 여전히 일본어를 할 줄은 몰랐지만, 웬만한 대화는 전부 이해할 수 있는 상태 였다.

졸업 요건을 충분히 만족했고, 더 이상 듣고 싶은 수업이 없던 때에 JAPN 10A. 기초 일본어 수업을 발견했다. 어차피 할 것도 없었고, 재밌어 보였기에 바로 신청했고 수업을 듣게 되었다.

이 수업을 들으면서 타인의 일본어는 이해할 수 있지만 직접 말은 할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기본적인 문법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これ食べてもいいですか?” 라고, 물으면, 수많은 애니, 드라마, 영화, 등등의 매체를 통해 들었던 경험으로 “이거 먹어도 되나요?”라고 알아서 번역되어 내 뇌 속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기본적인 문법을 모르는 나로서는 반대로 “이거 먹어도 되나요?”가 어떤 과정을 거쳐 “これ食べてもいいですか”가 되는지 알 길이 없었고, 그래서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초 일본어 수업을 들으면서 기본적인 문장의 구조와 상황에 따라 동사가 어떻게 변형되는지 이해했고, 이해가 되자 머릿속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일본 단어와 문장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하고 싶은 말은 자연스럽게 일본어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모르는 단어가 있기도 하지만, 이럴 때는 이미 알고 있는 쉬운 단어들로 설명하면서 대화했다.

현재

2024년 현재, 졸업하고 약 4~5년이 지났다. 사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공부를 하지 않은 건 여전하기 때문에 대학교 당시와 비교해서 크게 실력이 늘었다고는 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일본에서 일했던 경험 때문인지, 좀 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